신안이 낳은 두뇌의 최강자 이세돌의 향기가 남아있는 곳, 이세돌 바둑 기념관 | 신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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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이 낳은 두뇌의 최강자 이세돌의 향기가 남아있는 곳, 이세돌 바둑 기념관 | 신안여행
  • 레츠고신안
  • 승인 2019.11.1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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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비금 천일염 마을의 관광지인 이세돌 바둑 기념관

 

이세돌바둑기념관은 이세돌 9단의 모교인 비금도 대광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기념관이다. 기념관은 비금도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비금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섬 소년 불패 소년 이세돌을 홍보하는 공간이다. 이세돌과 바둑에 대한 물품을 전시하며 바둑과 관련된 행사가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바둑 동호회에서 꼭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넓고 푸른 잔디가 펼쳐진 이곳은 평화롭고 조용하며 여유롭다.

 

​기념관 입구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바둑판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인공지능 프로그램) 세기의 대결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사건 중에 하나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승부 결과는 4:1로 마무리됐다. 알파고의 승리였다. 알파고에서 1승을 획득한 이는 전 세계에서 이세돌이 유일하다. 이세돌은 "나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가 아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반상 위에 펼쳐지는 흑·백 돌의 삶과 죽음이 ‘사람의 인생과 닮았다’ 하여 흔히 바둑을 인생에 비유한다. 한자말로는 '위기', 우리말로는 '바돌. '바독, '바둑 등으로 불렸는데 광복 후부터는 ‘바둑’으로 통일되었다. 해방 후 일본에 바둑 유학을 다녀온 ‘조남철 9단’에 의해 현재 바둑의 모습을 갖췄다. 조남철 9단과 바둑인들의 노력으로 인해 지금의 본격적인 정신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바둑은 과학적이면서 수학적, 미학적인 게임이다. 두뇌 개발과 인성 발달에 매우 좋으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스포츠이다. 바둑의 필요성을 사회교육을 보급하고 있는데 바둑 교육은 집중력을 향상, 수의 원리를 깨닫게 하여 학습 효과를 키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세돌 바둑 기념관은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명절, 그 박에 군수가 필요하다고 정한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개관하니 비금도에 왔다면 꼭 한 번 들러보자. 직접 방문했을 때는 매표를 따로 하지 않았으며 관리인이 없었다.

 

이세돌은 깨끗한 바다, 병풍 같은 기암절벽과 해송이 어울려져 수려한 경관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섬 비금도에서 1983년 4월 2일에 태어났다. 3남 2녀 중 막내였다. 아버지는 가족의 화목과 단란함을 위해 하나의 공통어로 자녀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이세돌의 형 이상훈이 바둑의 길(프로기사 7단)을 걸었고, 그 외 이상희(5단), 이세나(6단), 이차돌(5단) 역시 아마추어 바둑 기사이다. 여전히 바둑은 가족의 의사소통 매개체로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는 아버지의 신념을 계속 지켜 나가고 있다.

 

 

​이세돌은 형인 ‘이상훈‘을 따라 입단했으나 본인보다 재능이 뛰어난 동생을 본 형이 은퇴를 선언한 후 동생 이세돌의 지원에 전념했다. 형은 신안천일염 감독으로 동생은 선수로 신안 비금도의 자랑이다. 이세돌은 12세에 프로가 되고 권갑용 사범 밑에서 2년 동안의 수련 결과 그의 나이 13살에 입단에 성공하였다.

​‘빠른 감각과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전투력’은 그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큰 승부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평정심, 불리한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담대함, 선택의 기로에서 머뭇거리지 않는 과감한 결단력, 독특한 발상이 이 모든 것들이 이세돌 9단의 바둑이다 할 수 있다. 이세돌이 세계 최강이 되기까지 항상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만의 바둑을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의 이세돌이 되기까지 어린 세돌의 소질을 발견하고 스승의 역할을 하며 그가 바둑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사람은 아버지(이수호)이다. 아버지는 광주교대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교편을 잡았던 교육자였다. 아침에 농사일을 나가면서 사활 문제를 내주고 저녁에 돌아와 답을 맞혀보는 방법으로 어린 자녀들을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 방법은 깊고 정확한 수읽기의 기틀을 잡아 주었다.

 

역대 3위 최단 기록이었기에 바둑계에서 이세돌 기사의 등장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나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기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바둑에 집중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끊임없는 노력과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에디슨의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과 같이 바둑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세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 입단 6년째 되는 해 이세돌의 질주가 시작된다. 5개월에 걸친 경기에서 32연승을 거두며 ‘불패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자신의 생에 첫 타이틀을 따냈고, 배달왕기전까지 우승하면서 2개의 타이블을 거머줬다. 연말 MVP, ‘바둑 문화상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하며 공식적인 국내 최고 기사로 인정받았다.

 

신안 천일염팀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신안 천일염팀의 우승은 선수들이 고르게 성적을 내고 이춘규 선수가 실리에 밝고 속기에 능해 바둑리그에 잘 맞았는데 여기에 이세돌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주장답게 책임감으로 대국에 임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어떤 선수가 부진할 때, 다른 선수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팀워크를 유지하는 능력을 감독 이승훈이 보여주었다. 본인이 뽑은 선수에게 "신뢰를 주는 감독으로서의 기본 도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신안천일염 바둑팀 홍보관엔 이세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형과 인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모형이지만 이세돌과 한 판 겨루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이세돌과 신안천일염 바둑팀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이세돌바둑기념관 탐방 성공!

 

 

​바둑의 역사가 살아있는 신안, 바둑계 국수의 맥이 흐르는 곳이다. ‘예도‘라고 칭해지는 바둑의 도시로서 신안군은 그 역사를 지켜왔고 현재 한국 바둑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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