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비금도에서 내 스타일을 완성했다 바둑기사 이세돌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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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비금도에서 내 스타일을 완성했다 바둑기사 이세돌 9단
  • 레츠고신안
  • 승인 2019.09.1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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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지 않나…”

지난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이세돌 대 알파고(인공지능컴퓨터)의 대국이 펼쳐졌다. 하루 한 차례씩 총 5회에 걸친 바둑 대결이었다. 첫 세 판을 내리 진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세돌(이하 이 9단)은 능력 부족을 시인하며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이 9단의 말은 곧바로 신문 머리기사를 대대적으로 장식했다. 지금은 ‘어록’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네 번째 대결에서 이 9단이 승리했고, 다섯 번째에는 다시 알파고가 이겨 최종 결과는 1승4패. 세계 최고라는 이 9단이 기계에 지다니…. 탄식이 나올 법도 하지만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컴퓨터와 인간의 바둑 대결은 2008년부터 여러 차례 치러졌다. 지금까지 인간의 유일한 1승이 이 9단의 것이다.

이 9단이 거둔 기록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 장담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화려했다. 열세 살에 프로기사로 입단해 지금까지 세계 바둑대회에서 15번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0년에는 32연승을 거두는 ‘신화’를 창조했다. 한국기원이 2003년에 승단 규칙을 개정한 뒤, 유례가 없는 속도로 9단까지 승단하기도 했다. 2009년 하반기에 6개월간 휴직을 하였으나, 2010년 복귀와 함께 24연승을 하며 통산 800승 고지에 올랐다. 같은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격적인 스타일과 야생마 같은 행보’로 세계 바둑계를 지배해온 이세돌 9단 ©연합뉴스

이 9단은 역전승을 가장 많이 한 기사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만 아무런 실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희망이 없는 국면에서도 상대의 어이없는 착각이나 실수로 역전승을 거둔 적이 많으니 내가 ‘행운의 기사’라는 말은 맞는 듯하다. 물론 운으로 바둑을 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인 만큼 운을 무시할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참고 책 <판을 엎어라>(이세돌 지음, 살림출판사 2012). 이하 인용부호 속 내용은 특별한 설명이 없으면 이 책을 인용한 것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만들고 그 실수를 재빨리 낚아 채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전개하는 것 또한 실력일 것이다. 그런 실력이 체화되어 이 9단의 역전승이 가능했을 수 있다. 그의 스타일을 짐작케 하는 ‘어록’ 몇 개를 소개한다.

“불리하다보니 대충 뒀는데 이겼네요.”
     ―2011년 중국 구리(古力) 9단에게 대역전승을 한 후 인터뷰에서 한 말.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2016년 1월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이 말의 출처를 묻자 “사석에서 한 말”이라고 밝힘.

“명색이 ‘구글(google)’인데 100만 달러는 조금 적은 것 아닌가?”
     ―알파고와 대국에서 이길 경우 100만 달러(한화 10억 원 이상)를 주겠다는 구글 측의 제안에 대한 답.

과연 이 9단의 행보는 언제나 바둑계의 이슈가 되었다.

‘공격적인 스타일과 야생마 같은 행보’가 이 9단에 대한 바둑계의 평가다. 늘 당당하고 발언에 거침이 없다. 이 9단의 어록을 찾아보면 유독 중국과 관련해 자신감이 넘치고 깜짝 놀란 만큼 소위 ‘쿨(cool)’한 발언들이 많다. 중국을 얕잡아 봐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9단은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도 상반기까지 극심한 슬럼프였다. 그렇게 헤매는 상황에서 중국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배웠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자만심을 떨쳐내고 심기일전해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후 이 9단은 중국 갑조 리그(유럽축구로 치면 프리미엄 리그)에 꾸준히 참여했고 중국 바둑의 거장들을 무너뜨렸다. 그래서인지 한때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한국인으로 이 9단이 꼽히기까지 했다. 반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기사는 이 9단이다(2016년 ‘바둑에 대한 국민인식’ 여론조사. 한국갤럽 2017.1.11. 발표).

이 9단은 1983년 신안군 비금도에서 아버지 이수오(1998년 작고)와 어머니 박양례 사이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 때 서울로 가 본격적으로 바둑공부를 시작했고, 1995년 열세 살에 프로에 입단했다.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비금도 천재 바둑소년 이세돌의 어린 시절 모습들

“바둑을 둘 때는 언제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독기는 부족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제야 독기가 생겼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잘 좀 했으면 좋았을 걸.’ 후회와 죄송스러움이 승부욕과 독기로 뿜어져 나온 것 같다.”

​이듬해부터 성적이 좋아졌고, 2000년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9단이 맨 처음 한 생각은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였다.

 

‘이세돌 소년’의 바둑가족. 사진 속에 없는 큰누나 이상희 씨도 아마5단이라고.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 배웠다. 한글보다 바둑을 먼저 가르친 스승도 아버지였다. … 나는 이미 비금도에서 내 바둑 스타일을 완성했고, 그것은 모두 아버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바둑계의 신성이 자신의 출발을 아버지와 비금도에서 찾았다. 튼튼한 뿌리가 값진 열매를 맺는 법, 그 평범한 진실을 이세돌 9단에게서 확인한다.


 

©이주빈

이세돌 바둑기념관

​신안군 비금면 비금북부길 573-1(지당리)

옛 비금 대광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했다. 이세돌 바둑 인생을 살필 수 있는 곳. 야외에는 알파고와의 대국 기념 조형물이 있다. 인근에 이세돌 생가가 있고, 기념관 뒤편 대나무 숲을 지나면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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